-
Notifications
You must be signed in to change notification settings - Fork 1
Expand file tree
/
Copy pathch6.html
More file actions
41 lines (37 loc) · 15.9 KB
/
ch6.html
File metadata and controls
41 lines (37 loc) · 15.9 KB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html lang=ko>
<head>
<meta charset="utf-8">
<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initial-scale=1.0,minimum-scale=1.0,maximum-scale=1.0,user-scalable=no">
<link rel="stylesheet" type="text/css" href="book.css">
</head>
<body>
<div id="content">
<h1>6장. 법과 의사소통 (Law and Communication)</h1>
<p>법률은 의사소통에 적용되는, 혹은 의사소통의 형태로 언어에 적용되는, 윤리적인 규제로 정의될 수 있다. 특히 의사결정을 통해 효과적인 사회적 제재를 결정하는 어떤 충분히 강력한 권위에 의해 법률의 규범적인 측면이 관리될 때 그렇다. 정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혹은 논쟁을 방지하거나 적어도 논쟁에 판결을 내리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개인들의 행동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연결부를 조절하는 과정이 법률이다. 따라서 법률의 이론과 실제는 두 가지 종류의 문제를 안게 된다: 하나는 일반적인 목적으로서 정의의 개념이라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의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기법의 문제이다.</p>
<p>경험적으로 볼 때, 인류가 역사를 통해 유지해온 정의라는 개념은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들이나 인류학자들이 발견한 문화들 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의 도덕적 관념 그 자체 이상의 고차원적인 규범으로 정의를 정당화하긴 어렵다고 보는데, 도덕적 관념이란 것도 정의라는 개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서구적 전통에 기원을 둔 자유주의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지만 강한 지적-도덕적 전통을 가진 동양의 나라들로 확장해서 그 나라들로부터 실로 많은걸 배운 사람으로서, 나 자신은 정의의 존재 및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요구사항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프랑스혁명의 단어들이다: 자유, 평등, 박애. 이것들이 의미하는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에게 내재된 가능성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는 자유. A와 B에게 공정한 것은 A와 B의 지위가 바뀌더라도 여전히 공정하게 남게 되는 평등. 그리고 인간미의 부족함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지는 호의. 정의에 대한 이 위대한 원칙들은 누구도, 개인적 지위의 힘을 이용해 협박으로 냉혹한 합의를 강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또 요구한다. 공동체나 국가가 존재함으로써 필요로 할 수 있는 강요는 불필요하게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실행이 되어야만 한다.</p>
<p>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인간적 품위와 자유주의도 그 자체로 공정하고 집행가능한 법률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의의 일반적인 원칙에 덧붙여서 법은 일반 시민들이 사전에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평가할 수 있을만큼 명확하고 재현가능해야 한다. 그 권리와 의무들이 서로 충돌하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는 판사나 배심원이 그의 입장을 어떻게 볼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법 조항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소송과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p>
<p>이 사안을 가장 단순한 관점, 즉 계약의 관점에서 보도록 해보자. 이제 A에게 B를 위해 B에게 이로운 어떤 서비스를 수행할 책임이 있다고 해보자. B는 그 댓가로 A에게 이로운 서비스를 수행하거나 비용을 지불할 책임을 가진다. 각각의 작업과 각각의 비용이 명확하다면, 그리고 양쪽 중 일방이 계약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이 거래가 공평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두 계약 당사자들의 판단에 맡겨도 안전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명확하게 불공평한 거래라면 적어도 계약당사자 중 한쪽은 거래를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거래에 사용된 용어들에 확정된 의미가 없거나 그 의미가 법정마다 다르다고 한다면, 그들은 공평하게 합의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특정 상황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법의 첫번째 임무이다. 덧붙여서, 특정한 권위자의 의지나 해석에 가능한한 멀리 떨어진 독립적인 법적 해석 기구가 있어야 한다.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은 공평함보다 중요하다. 왜냐면 재현가능성 없이는 공평함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p>
<p>이것이 대부분의 사법 제도에서 판례가 매우 중요한 이론적 무게를 지니는 이유이고, 모든 사법 제도에서 판례가 중요한 실질적인 무게를 지니는 이유이다. 정의에 관한 특정한 추상적인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고 주장되는 사법 제도들이 있다. 대부분의 유럽 대륙의 법률을 구성하고 있는, 로마법과 그 파생 법률들이 여기에 속한다. 영국법처럼 다른 제도들이 있는데, 거기에선 판례가 사법적 판단의 주된 기반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양쪽의 경우 모두, 어떤 새로운 법조문이 완전히 확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 법률과 그 법률의 한계가 현실에 적용된 이후에나 가능한데, 이것이 바로 판례이다. 이미 존재하는 판례에서 내려진 판결을 위배하는 것은 법률적 언어 해석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것이되며, 불공평함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모든 결정난 판결은 이에 관련된 법률적 정의들이 과거의 판결들과 모순이 없도록, 그리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판결들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용어는 그 지역의 관습과, 그 용어가 관련된 사람들의 활동 분야의 관습에 따라 시험되어야 한다. 법률을 해석하는 역할을 맡는 판사는, 판사A가 판사B와 바뀌더라도 법정에서 관습이나 법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실질적인 변화가 없을 거라고 기대되도록 그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기정사실이라기 보다 어느정도는 이상적인 것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이상을 가깝게 쫓지 않으면 혼돈을 맞게 될 것이고, 더 나쁘게는 부정한 사람이 법규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을 먹이로 삼는 황무지를 맞게 될 수 있다.</p>
<p>이 모든 것은 계약의 관점에서는 매우 명확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법의 다른 갈래, 특히 시민법에 이르기까지 멀리 확장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A가, 직원인 B 부주의로 인해 C에게 속하는 재산에 피해를 입혔다. 누가 어느 정도의 손실을 책임져야 할까? 이 정보들이 사전에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면,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사람이 그가 하는 일에 대해 가장 높은 가격을 받도록 해서 스스로 보험을 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그가 가지는 불리한 점의 상당부분을 상쇄할 수 있다. 이것이 가져오는 일반적인 효과는 손실을 공동체 전체로 분산시켜서 어느 누구의 손실도 파산을 가져올 정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불법행위에 관한 법률도 어느 정도 계약에 관한 법률과 같은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 손해의 가능성이 매우 큰 법률적 책임은 일반적으로 손해를 초래하는 사람이, 그의 제품의 가격을 높이거나 그의 서비스의 요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그의 위험을 사회 전체에 전가하도록 만든다. 계약에 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모호하지 않은 명확성, 판례, 명확한 해석에 관한 전통은, 특히 책임을 부과하는데 있어서, 이론적인 공정성보다 더 가치가 있다.</p>
<p>그러나 당연히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예를들어, 채무에 대해 감옥살이를 부과하는 과거의 법률은 빚을 갚아야 하는 개인을, 빚을 갚기 위한 방법을 마련하기 가장 어려운 바로 그 위치에 두게 한다는 점에서 불공평했다. 현재에도 불공평한 법률들이 많이 있는데, 일례로 실재하는 사회적 환경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 쪽에도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채무에 의한 감옥살이에 대해 이야기된 내용은 예속인(peonage, 역자주: 빚 때문에 노예 신세가 되는 시스템)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타당하며, 이와 비슷한 여타의 오용된 사회적 관습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p>
<p>자유, 평등, 박애의 철학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사법적 책임이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사항 외에 하나의 요구사항이 더 추가되야 하는데, 한쪽은 협박을 받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유로운 상태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디언들을 다루어온 역사는 이런 문제의 사례들로 가득한데, 협박의 위험과 모호성의 위험 양쪽이 다 존재했다. 식민지 개척의 첫 시작부터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공정한 기반에서 만나기엔 인구도 부족했고, 무기도 부족했는데, 특히 백인과 인디언 간에 이른바 토지조약이란 것을 협상할때가 그랬다. 이러한 철저한 불평등함 외에도 의미론적인 불평등함이 존재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훨씬 큰 것이었다. 사냥하는 인종인 인디언들은 토지가 사적소유물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부동산권이라는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대신 특정 지역에 대한 사냥 권한이란 개념이 존재했다. 이주민들과 맺은 조약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사냥 권리였고, 일반적으로 단지 특정 지역에 수반되는 사냥 권리였다. 반면에,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그들에게 주는 것으로 믿었다 (그들의 행동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상황하에서, 겉모습만 정의라고 할만한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았다.</p>
<p>오늘날 서구 국가들의 법률에서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건 범죄에 관한 것이다. 법률은 처벌을, 어떨때는 다른 가능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협박으로서, 어떨때는 범죄를 저지를 사람의 속죄를 위한 의례적인 행위로서, 어떨때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추방해서 반복되는 범죄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리고 어떨때는 범죄자를 사회적, 도덕적으로 계도하는 대행사로서 생각하는 듯 하다. 이것들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작업이며, 네 개의 다른 방법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정확한 배합 방법을 모른다면 범죄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역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p>
<p>현재로선, 형법은 어떨때는 이렇게 말하고 어떨때는 저렇게 말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속죄인지, 추방인지, 계도인지, 혹은 범죄의 예방인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들 중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고 혼란속에서 범죄는 또다른 범죄를 부르게 될 것이다. 4분의 1은 교수형을 선호했던 18세기 영국의 편견으로, 4분의 1은 범죄자를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4분의 1은 마음내키지 않는 계도 정책으로, 4분의 1은 사형 후 매달아서 까마귀에 뜯기게 해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정책으로 어떤 법률조항을 만들던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p>
<p>이렇게 설명해보자. 법률의 첫번째 의무는, 두번째나 세번째는 무엇이 됐던 간에, 그것이 원하는 바를 아는 것이다. 입법자나 판사의 첫번째 의무는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은 표현을 만들어서 전문가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도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판결을 해석하는 기법은 변호사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이야기된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법정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도 높은 확률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법률의 문제는 의사소통에 관한 것임과 동시에 사이버네틱스 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이 문제는 특정한 중요한 상황을 질서정연하고 반복가능하게 제어하는 문제인 것이다.</p>
<p>법률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그 법률이 고려하고 있는 실질적인 상황이 의미론적으로 만족스럽게 일치하지 않는 분야는 매우 많다. 이러한 이론적인 일치를 찾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두 개의 통화 시스템에서 서로를 교환하기 위한 합의된 기준이 없는 경우와 같은 분쟁지역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 법정과 다른 법정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지역 혹은 하나의 화폐제도와 다른 화폐제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항상 부정직한 중계인을 위한 도피처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부정직한 중계인은 그에게 가장 유리한 시스템이 아닌 곳에서는 재정적인 측면이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합당한 비용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의 손실이 가장 적은 시스템에서만 비용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범죄의 가장 큰 기회는 법률의 틈새를 찾는 부정직한 중계인에게 있다. 나는 앞 장에서 사람간의 의사소통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요소로서의 잡음은 피해를 주기는 하지만 의식적으로 악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바 있다. 이것은 과학적인 통신에서는 맞는 말이고 크게 봐서는 두 사람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있어서는 단연코 틀린 말이다.</p>
<p>우리의 법률 시스템의 전체적인 특성은 갈등을 다루는 것이다. 여기엔 적어도 세 파트가 참여하는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민법의 경우, 고소인과 피고, 그리고 판사와 배심원단으로 대표되는 사법 시스템이 그들이다. 이것은 폰 노이만 적인 게임인데, 소송당사자가 법에 정해진 규정들만을 이용해서 판사와 배심원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반대편 변호사는, 자연(nature) 그 자체와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상대편의 메시지에 혼란을 개입시키려 노력한다. 그는 상대방의 진술을 넌센스로 격하시키려 노력하고, 그의 적대자와 판사 및 배심원 사이의 메시지 교환을 필사적으로 방해하려 한다. 이 방해공작엔 종종 속임수가 과도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얼 스탠리 가드너(역자주: 미국 변호사 출신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 1889~1970) 의 탐정소설에 그려진 법정 절차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데, 실제 소송에서는 종종 속임수 혹은 메시지를 보내는 자가 자신의 전략을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노력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기도 한다.</p>
</div>
<div id=header>
<span class=btn-left onclick="toc()">목차</span>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br>
6장. 법과 의사소통 (Law and Communication)
</div>
<script src="book.js"></script>
<div id=footer>
<span class=btn-left onclick="prevPage()">이전</span>
<span id='pg-count'>-</span>
<span class=btn-right onclick="nextPage()">다음</span>
<script>setPageCount();</script>
</div>
</body>
</html>